[정항래 특별기고]
군 최고 통수권자 윤석열은 군대를 전혀 알지 못했고, 이해하려 노력하지도 않았다.
그래서 친위 쿠데타는 6시간 만에 실패할 수밖에 없었다!
‘123 비상계엄, 친위 쿠데타, 내란 우두머리(수괴) 긴급체포, 국가기관 대치,공조본/ 경찰/ 경호처 8시간 대치 등’ 70여 년 한국 현대사, 격동의 역사였지만 이렇게 생경한 언어들을 한꺼번에 듣게 되는 것도 참 드문 일이다. 특수통 검사 출신 법조인 대통령이 만든 이 불법의 광풍(狂風)이 참 우스꽝스럽고 대단하다. 그러나 역사는 흐르고, 스토리는 결말을 향해 치다르고 있다.
선거를 통해 합법적으로 집권한 대통령이 불법적인 방법을 동원해 더 큰 권력을 얻기 위해 친위 쿠데타를 일으켰다. 정권수호라는 미명하에 내란을 일으킨 것이다. 대한민국에선 1972년 10월 유신에 이어, 윤석열의 내란 행위가 두 번째 친위 쿠데타이다.
그러나 쿠데타는 실패했고, 이를 추종한 부하(특히 군인)들은 다 잡혀들어갔다. 그런데 기묘하게도 우두머리는 홀로 이 모든 것을 인정하지도 책임지려 하지도 않는다. 오히려 이 혼돈의 시대에 세치 혀를 놀리며, 혼돈에 편승하려는 기회주의자들과 의기 투합하여 또다른 모의를 도모하는 듯한 형국을 만들고 있다.
최악이다. 한마디로 역사의식의 부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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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송되는 계엄군 사령관의 안타까운 모습>
군 통수권자 윤석열은 군대를 전혀 몰랐고,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쿠데타는 실패했다. |
친위 쿠데타는 99% 성공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런데 정권 수호라는 미명하에 진행한 윤석열의 1203 쿠데타는 1차 목표인 국회도 점령하지 못한 채 6시간 만에 끝났고, 내란 수괴 우두머리는 부하들을 모두 감옥에 보내고, 대통령 관저에 고립되어 숨어있다가, 그가 대통령이 되기 전 30년 몸담았던 검찰 조직의 후배 검사가 이끄는 경찰병력에 긴급 체포되는 극적인(?) 드라마를 연출했다.
참 어리석다... 한마디로 오호 통제(嗚呼痛哉)다!
왜, 그는 실패했는가? 5가지 측면에서 조명해 본다.
1. 윤석열은 군을 검찰 조직 정도로 생각했다. 명령만 내리면 전군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줄 착각했다.
검찰 조직은 검사 2,292명, 직원 수 8,337명이다. 군으로 따지면 1개 사단급도 되지 않는다. 심지어 그가 검찰총장 시절 지휘했던 대검찰청은 검사 50명, 직원 수 495명이다. 중령급이 지휘하는 증강된 1개 대대급 수준이다.
특수부 검사 출신 대통령은 당연히 검찰 조직보다 군은 상명하복 절대 충성으로 잘 무장된 집단으로 생각했을 것이다. 그가 본 군은 40년 만에 처음 연속으로 열린 국군의 날 시가행진에서 본 일사불란한 군대, 그것이 전부였는지도 모른다. 그 일사불란함은 몇 달에 걸려 반복 반복으로 만들어진 것임을 그는 주목하지 않았을 것이다.
본인이 결심하고 최고 권력 행사자 국방 장관(김용현)이 메가폰을 잡은 스펙터클한 시나리오가 뜻대로 그려지지 않을 것이라고는 1도 생각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군은 50만 명 이상의 거대 조직이고, 다양한 부대와 팀들이 수천 가지 임무를 수행하는 거의 틈새가 없는 관료화된 집단이다. 즉 개인이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는 조직인 것이다. 특히 국방의 구성 요원들은 군의 존재 이유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킬 때만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것을 명확히 알고 있다. 그래서 군은 평시에도 함부로 할 수 없는 소리 없이 강한 조직인 것이다.
최고 군 통수권자(윤석열)와 2인자 국방부 장관(김용현)은 잠시 맡겨진 권력의 힘에 취해, 공권력과 국가 무력 사용을 너무 쉽게 생각했다. 군대는 법과 명분, 정의가 기반이 되지 않는 한 검찰 조직처럼 그렇게 쉽게 오랫동안 충성스럽지도 일사불란하게 움직일 수도 없는 조직이다.
2. 윤석열은 국방장관(김용현)을 너무 과신했다. 놀랍게도 그는 충암파와 노상원 외 어떤 조직도 만들지 못했다!
12월 3일 긴박했던 비상계엄 선포날! 장관은 합참 지휘 통제실에서 군/ 정부 비화폰 그리고 개인 휴대폰까지... 휴대폰 3개를 들고 종횡무진, 동분서주 작전을 지휘했다. 그런데 같은 공간에서 합참의장과 국방차관은 물론 용산의 군 조직은 이런 장관에 동의하지 않고 그냥 지켜만 봤다고 한다. 소위 국가 명운(?)을 건 6시간의 국방부, 계엄령을 주도한 실세 국방장관의 모습으로 상상하기 힘든 장면들이다. 이미 시작부터 쿠데타 실패는 예견된 것이었다.
국방장관 김용현은 그를 대신할 특별한 충성 조직을 만들지 못했다. 그런 그를 대통령은 100% 믿었다. 미리 공모(共謀)는 했을지 모르나, 장관을 대신해 계엄을 시행할 수 있는 조직을 만들지 못한 상태에서 작전은 시행됐던 것이다. 이런 기막힌 상황을 대통령은 아직도 알지 못하고, 그냥 억울해서 징징거리는 형국을 하고 있다.
1979년 12.12 군사 반란... 서울의 봄이란 영화를 보면, 전두환은 1명의 그림자 대리인과 2개의 충성 조직을 가지고 반란을 모의 시행한다. 1명의 대리인은 노태우 9사단장(육군 소장)이었고, 2개의 조직은 하나회와 국군 보안 사령부라는 강력한 충성 조직이었다.
영화 속에서처럼 전두환의 위임된 권력은 마치 잘 훈련된 참모조직처럼, 전두환을 지휘 주목하면서 변화하는 상황을 기민하게 관리하고 대처한다. 어차피 계획대로 흘러가는 쿠데타는 없다. 변하는 상황을 누가 더 치열하게 때로는 강력하게, 또 때로는 비열하게 관리하느냐에 성패가 결정된다.
김용현과 전두환.... 이 두 명의 비운의 군인은 시작이 달랐고, 절박함이 달랐고, 결정적인 순간에 전혀 다른 모습으로 행동했다. 이미 1203 비상계엄의 실패는 시작부터 예견되어 있었다.
3. 윤석열은 평시 계엄(전쟁 이외)을 할 수 없도록 군대가 오랫동안 조직 개편과 제도 개선을 하며 변화했다는 것을 감지하지 못했다. 당연히 군은 초기 계엄을 집행할 수 있는 훈련과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다.
한국 현대사에 비상 및 경비계엄은 12번이나 발령됐었다. 그래서 한국인들은 계엄이란, 민주주의를 짓밟는 악마의 수단과 독재로 가는 디딤돌로 정의하고 민주화된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다시 계엄은 있을 수 없다고 공통된 인식을 하고 있었다.
한국군 역시 1979년 1212 군사 반란 이후 45년 동안 지속적인 조직개편과 제도, 훈련 정비를 통해 평시에 계엄을 할 수 없는 상태로 변화해 왔다.
1. 1990년부터~ 현재의 합동군제 합동참모본부가 자리잡게 된다. 기존 각군 총장, 특히 육군총장이 갖고 있던 군정과 군령 기능을 개편하여 합참이 군령권을 행사하게 된다(1992년). 이에 따라 합참의장은 각 군의 작전부대와 합동부대를 작전지휘·감독하고, 평시 독립전투여단급(獨立戰鬪旅團級) 이상의 부대 이동 등을 감독하고 통제하게 되었다.
이에 따라 1203 비상계엄에 참여한 부대는 평시 국방부 및 육군 직할부대인 수방사, 특전사, 방첩사, 정보사로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영화 ’서울의 봄‘에서 특전사 외에 전방 9사단, 20사단, 기갑여단들이 서울로 진입하고, 포병부대가 서울 포격을 준비하는 그런 사태는 (합참의장이 승인하지 않는 한) 지금은 불가능한 구조로 이미 바뀌어 있었다.
2. 합참의장이 군령권을 가지게 되면서 특별한 사유가 없는 한 계엄사령관은 육군 참모총장에서 합참의장으로 바뀌었다. 이에 따라 합동참모본부 직제 제2조-12호에는 계엄에 관한 업무 일체를 육군에서 합참(민군작전부 계엄과)으로 이전하여 의장을 보좌하도록 통제하고 있다. 그 이전에는 육본 민사심리전 참모부 계엄과가 업무를 관장했다.
1203 비상계엄시 갑자기 육군총장이 계엄사령관에 임명되다 보니, 그를 보좌하는 계엄 조직은 전혀 부재했고, 자연스럽게 초기 계엄 업무는 정상적으로 수행될 수 없었다. 현재까지 합참 계엄과는 이번 사태에 육군 총장을 직접 보좌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3. 문민정부를 거치며 조직뿐만 아니라 시위 진압을 위한 충정 훈련, 진압봉 등 모든 시위도구들이 폐기됐다. 또한 매년 예산을 투입하여 확보했던 시위 진압용 각종 최루탄 등을 폐기하고, 탄약고 저장 목록에서 삭제했다. 이번 국회 진입 시 계엄군의 허술함 그리고 어떠한 시위 진압 장비도 운용되지 못한 것은 이런 이유 때문이다.
이런 군대의 변화를 윤 대통령은 전혀 보고받지도, 인지하지도 못했을 것이다. 사법고시를 9번 탈락하고 1994년에 초임검사로 임명된 윤석열은 1212 군사 반란이 일어났던 70년대 말, 80년대 초, 20대 젊은 시절 생각... 영화 '서울의 봄'에 나오는 전두환과 계엄군의 성공 모습을 머릿속에 그려놓고, 이 엄청난 국가적 불행을 병정놀이하듯이 너무도 심플하게, 어쩌면 아무 생각 없이 지시했을 수 있다. 그렇지 않고서는 1203 비상계엄은 도저히 이해도 설명도 되지 않는다.
4. 군대는 국군 통수권자(윤석열)을 진심으로 존경하지도, 좋아하지도 않았다. 오히려 군심(軍心)은 국가 위기가 발생하면 군 통수권자 때문에 더 위태로워질 수 있다는 불안감을 가지고 있었다.
2022. 3. 10. 군 통수권자 취임 후 끊임없이 대통령의 '공정'과 '상식', '정의'는 의심받기 시작했고, 군 관련 공약과 지시는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사례] "채상병 수사 외압 의혹 몸통은 윤 대통령” 이란 큼직한 기사제목은 군심을 계속 흔들기에 충분했다.
[사례] '병장 월급 200만 원' 포퓰리즘 공약의 시행은 군대를 거센 후폭풍 속으로 몰아넣었다. 상대적 박탈감으로 사기가 떨어진 하사·소위 구인난은 심각해졌고, 간부들이 미련 없이 떠나는 군대, 젊은이가 찾지 않는 위기의 군대로 급격하게 추락시켰다.
사관학교 붕괴론, 학군장교 양성 시스템 붕괴, 하사관 지원율 급감, 중,상사급 집단 전역 등 군내 위험 시그널은 계속 외부로 타전되고 있다.
[사례] 군 현실을 모르는 국군통수권자의 모순된 지시는 군심을 어이없게 만들었다.
2024. 9.17 육군 15사단을 방문한 윤 대통령은 뜬금없이 "잘 먹어야 훈련도 잘하고 전투력도 생긴다"라며 전투식량과 통조림 보급을 강조했다. 이때는 공교롭게도 군내에서 간부들에게 전투식량을 강제 급식시키고, 급식비를 내라고 한다는 강매 논란으로 시끄러울 때였다. 뜬금없는 대통령의 전투식량 추가 급식 지시는 많은 군인들을 어리둥절케 하였다. 거기다가 대통령의 지시로 증액된 전투식량 요구 예산 506억중 239억 원이 삭감되고 267억 원만 반영되는 모습을 보면서, 군 통수권의 명령이 얼마나 가벼워졌는가에 대해 오히려 큰 우려와 걱정을 하게 됐다.
[사례] 윤 대통령의 대북 정책은 제재와 압박 일변도였다. 북한 핵 및 군사력 변화, 북중러 3각 동맹 강화, 우크라이나 북한군 파병 등 급격한 안보환경 변화에도, 대통령은 70-80년대 ‘반공’을 한결같이 외쳐 됐다. 그리고 군에는 일전불사의 전쟁의지를 계속 주문했다. 많은 국민들은 대통령이 '호전광' 아닌가 걱정했고, 작은 도발도 전쟁으로 비화할 수 있다는 염려는 더욱 커졌다. 북한과 대화 필요성을 제기하는 그룹에는 가차 없이 종북세력, 반국가세력으로 싸잡아 비판했다. 군 최고 통수권자는 전쟁 예방이 아니라 북한이 제발 도발해 주기를 바라는 위험천만한 줄타기 곡예를 하는 형국을 만들었다.
[사례] "시중에 군 통수권자가 알코올에 중독됐다는 등 가짜 뉴스가 횡횡하다", 하루에 소맥 20잔을 먹는다는 얘기가 유튜브에 여과 없이 나돌았다. 술 취한 군 최고 통수권자... 그것은 국가 안보에 심각한 위험신호였다.
5. 군 최고 통수권자의 권능은 지엄한 명령에서 출발하고, 최종 모습은 모든 것을 내 탓이라고 책임지는 모습으로 종결되어야 한다.
군인들은 종종 ‘잉어의 체념의 철학’에 대해 얘기한다. 낚시꾼에 잡힌 잉어가 도마 위에 올려지는 신세가 된다. 그러자 잉어는 ‘그래 마지막 선행을 하자! 인간을 위해 좋은 음식 재료라도 되어주자, 그게 나의 기쁨이지...’, 생각을 마친 잉어는 도마 위에서 살아보겠다고 파닥거렸던 것을 멈추고, 일순간 조용히 조리사의 칼을 기다린다.
군인에게 중요한 것은
진퇴를 결정하는 것. 그리고 전투의 결과를 책임지는 것이다. 무릇 국가의 지도자, 군기(軍旗)를 가진 장군(리더)은 명쾌한 자기 사생관을 가져야 한다. 그런데 국군의 최고 통수권자였던 윤석열은 이 두 가지 모두 부족한 듯 보인다. 정말 안타깝다. 결국 시간이 지나면 더욱 초라해질 텐데 말이다.
50만 군대가 한때 존경하고 사랑했던, 20대 대한민국
국군 통수권자 윤석열에게 꼭 말씀드리고 싶다.
‘하늘의 뜻이 다했다!’
‘멋지게 군 통수권을 내려놓아야 한다. 진퇴가 흐려지면 초라해진다!’
‘軍心은 이미 당신을 버렸고, 당신과 함께하는 正義는 더 이상 다시 살아날 수 없다!’
‘아무도 다치지도 죽지도 않은 내란은 내란이 아니다’는 억지 궤변을 늘어놓는 세력들에게 책임을 다하는 통큰 모습으로 말해야 한다. ‘그만해라! 더 나가면 나라가 위험하다!’
- 특별기고 [정항래]
- 前 육군 중장, 보병 21사단장, 특전사 9공수여단장,
- 前 연합사/육본 군수부장, 육군 군수사령관
- 前 유엔 PKO 국군의료지원단장
- 前 국방연구원 자문위원
- 영국 왕립군사연구소 연구원